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 이웃에 대한 나눔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딸랑이는 종소리를 울리며 성금을 모으는 빨간 구세군 자선냄비가 아닐까.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심한 올해, 자선냄비는 조금 달라졌다. 서울 시청광장에 자선냄비 체험관을 운영하는 오프라인 행사는 길에서 모금하던 방식과 유사하지만 기부자가 어디에 있든 간편하게 기부할 수 있도록 기부방식을 추가한 것. 18년 동안 빨간 구세군 자선 냄비를 제공하고 수리한 독일 조리기기 브랜드 휘슬러(Fissler)와 함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상 ‘러브팟 AR필터’를 사용해 마치 체험관에 있는 것처럼 사진을 찍어 업로드하면 게시물당 1000원씩 휘슬러가 기부하는 챌린지를 진행한다. 재미·주체적 가치소비·간편함을 담은 이 같은 나눔은 최근 유행하는 기부방식의 교집합이다. 남은 올해 2주간 재밌고 간편하게 나눔을 전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골라봐도 좋겠다.

◇기부에 기술 더하다

현실 세계에서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을 3차원의 가상세계에서 할 수 있는 메타버스(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와 현실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어)가 대두되면서 나눔도 메타버스 플랫폼 속에서 가상화폐로 진행되고 있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국내 최초 블록체인 기부 플랫폼 ‘체리’와 업무협약을 맺고 메타버스·블록체인 기반 모금캠페인을 열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대면 모금활동이 제한적인 상황인 데다 MZ세대에게 친숙한 메타버스와 블록체인 플랫폼을 활용해 대국민 기부 참여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것이다.

블록체인 기부서비스 ‘기브어클락(GIVE O’CLOCK)은 국내 대형 기부 단체에 기부가 몰리는 기부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사용자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해 각 지역 복지기관의 참여를 끌어올려 기부자 가까운 단체에 나눔이 전파될 수 있도록 하고, 블록체인 기술로 기부 신뢰도도 상승시킨다는 전략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기부가 시작되면 모든 관련 정보, 내역이 기록되고 누구도 변경할 수 없어 기부자는 자신의 기부 내역이 향후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산경남을 기반으로 하는 경험디자인 스튜디오 UXdot(유엑스닷)과 스타트허브는 메타버스에서 자원봉사활동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장을 펼쳐보인다. 메타버스 내에서 만난 아바타들이 내는 미션을 3번 수행하면 스노우타운 광장 트리를 오너먼트로 하나씩 채울 수 있으며 트리가 오너먼트로 다 채워지면 오너먼트 하나당 1000원 기부로 이어지게끔 했다. 미션은 우리 주변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위한 “윗동네 할아버지께 드릴 도시락 전달을 도와줘”와 같은 일상 속 부탁이다.

UXdot(유엑스닷) 한지성(33) 서비스 디자이너는 “평소 기부 방식을 재밌거나 색다르게 디자인할 수 없을까 고민했는데 메타버스 플랫폼이라면 지역, 거리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게임처럼 일상 속 봉사활동을 체험하면서 메타버스안에서 일어난 나의 작은 성취가 실질적인 기부로 이어지면 재미와 의미를 함께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며 “이번 시도로 기존 상업적인 용도 혹은 1회성 행사에 맞춰진 메타버스 활용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메타버스를 일반 시민들과 함께 적용해보는 계기, 또한 기존 기부·봉사활동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전환할 수 있는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SNS 챌린지의 나비효과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한 아이스버킷챌린지에서 시작해 개인이 참여하는 챌린지들이 최근 크게 늘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성금 모금 등 나눔활동이 SNS 기반으로 진행되면서 그 범위와 방식이 다양해졌다. 짧은 영상, 사진을 찍고 게시물에 지정된 해시태그를 달아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는 의료진과 소방관, 방역관 등의 헌신적 노력에 감사를 표현하는 #덕분에 챌린지 등도 그중하나다. 여기에 기부를 더해 각자 걷기나 달리기, 춤추기, 특정 필터·해시태그가 포함된 사진찍기 등 사람들이 쉽고 재밌게 참여하면서 인증할 수 있는 활동 챌린지(또는 캠페인)를 진행하고, 참여자가 활동 인증을 개인 SNS에 올리면 제시했던 기부 또는 기념품과 같은 보상을 주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경남은행은 지난 11월부터 12월 12일까지 짧은 특정 춤을 추는 동영상을 업로드하면 게시물당 1만원씩 은행에서 코로나 취약계층에 기부하고 참여자 일부에게는 선물을 증정하는 ‘BNK고백챌린지’를 진행했고 앞선 9월에는 임직원과 가족이 ‘나눔걷기 기부 챌린지’로 1000만원을 마련해 창원·울산 미혼모의 집에 아기용품 꾸러미를 전달했다. 경남농협은 걷기 전용앱을 통해 목표 걸음 수 달성이 확인되면 200만원 상당의 농·축산물을 기부하고 별도 시상하는 ‘2021 함께하는 워킹 챌린지 기부운동’을 전개했다.

BNK경남은행이 실시한 고백(goback) 챌린지
BNK경남은행이 실시한 고백(goback) 챌린지

올해 기부 트레일런에 참가했다는 김태엽(29)씨는 “어려운 챌린지를 해낸 후 느끼는 성취감, 뿌듯함이 좋고 실용적이며 디자인이 예쁜 디자인의 리워드(보상)이 있어 참여했다”며 “MZ세대는 SNS에 과시 내지 성취감을 표현하는 동시에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과 연대와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서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원하는 프로그램·리워드·성취감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느끼면 참여를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경남농협 워킹챌린지.
경남농협 워킹챌린지.

◇나는 ‘굿즈’로 기부한다

재미와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1980년대 초반~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0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Z세대를 아우르는 말)들을 중심으로 불붙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문화연구소가 올해 발표한 ‘2021 기부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관련 기부는 20·30대 기부액 증가율이 각각 23.8%, 19.9%로 가장 높았으며 이전 세월호 참사, 강원도 산불 특별모금 때와 비교했을 때 20대의 기부 참가자가 6배 증가하는 등 가장 큰 증가세를 보였다.

이들은 SNS, 메타버스를 편히 다루면서 스스로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표현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에 거리낌이 없다. 기부도 소비의 하나로 여기며 가치있는 소비에 중점을 두면서 적극적으로 각종 나눔 챌린지에 참여하고, 최근에는 스스로 주체가 돼 작은 기부 운동을 만들어 참여를 독려하기도 한다. 또 선행을 한 착한 가게에 찾아가거나 수익 기부를 예고한 곳의 제품을 구입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해 ‘돈쭐’을 내주기도 한다. 게시물 업로드를 통해 모은 콩으로 기부처를 선택해 기부할 수 있는 네이버 ‘해피빈’, 기부 또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굿즈(제품) 제작비를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 ‘와디즈’ 같은 플랫폼에서 가치소비를 실현하고 있다.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